美中(미중)의 아시아/태평양 패권 경쟁 (2) 2012.6.7
과거 등소평이 개혁과 개방을 통해 중국을 이끌던 시절 국가운영 방책으로 제시한 유명한 말이 있었으니, 바로 韜光養晦(도광양회)였다.
직역하면 ‘빛을 감추고 어둠을 기르자’는 말이고, 풀이하면 매사 드러내지 말고 조용하고도 묵묵하게 중국의 능력을 키워가자는 말이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선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비교적 쉽게 알 수 있다. 바둑 격언에도 勢孤取和(세고취화), 내 형세가 고단하면 싸우지 말고 화평을 취하라는 말이 있는데 사실 같은 뜻이다. 그러니 우리에겐 그 말이 무척이나 익숙한 개념인 셈이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 사람들은 이 말의 본뜻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 서양의 바둑에 해당되는 체스 게임에는 이런 격언이 없다.
이런 대목이 동서양 문화의 차이라 하겠다. 그런 이유로 해서 서구인들은 도광양회라는 말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 서구세계나 미국인들은 이 말에 대해 ‘중국이 지금은 아직 약하니까 국제 문제에 대해 속내를 밝히기보다는 매사 내실을 키우는데 치중하려고 한다’는 정도로만 이해했다.
韜光養晦(도광양회)라는 말은 노자의 道德經(도덕경)에서 시작된 현실철학에 근거를 둔다.
다음의 말을 한 번 생각해보자.
藏巧於拙 用晦而明 寓淸于濁 以屈爲伸 眞涉世之一壺 藏身之三窟也.
장교어졸 용회이명 우청우탁 이굴위신 진섭세지일호 장신지삼굴야.
儒彿仙(유불선)의 사상이 종합된 채근담에 실려 있는 유명한 문구이다.
교묘한 솜씨가 있어도 서툰 것처럼 하고, 밝게 보는 지혜가 있어도 어두운 척하며, 맑더라도 혼탁한 물에 섞어버리고, 허리 세우는 당당함보다는 굽실거릴 수 있다면 험한 세파를 헤쳐 나가는 편안한 수단이 될 것이요 아울러 굴을 세 개나 가진 영리한 토끼처럼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도 이미 이런 종류의 사상이나 처세관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 이는 우리가 이미 서구화의 영향을 깊숙이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최근에 와서 채근담과 같은 고리타분한 책은 읽는 이도 별로 없지만, 설령 읽더라도 그 속의 말들을 그저 야비한 處世術(처세술)이나 하는 수 없이 써야 하는 임시방편의 테크닉 정도로 알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나 중국이나 모두 동아시아 문화권에 속해 있지만, 서구화된 우리는 앞서 채근담의 말을 기교나 술책 정도로 알고 있는 반면 중국인들은 세상을 살아가는 기본적인 진리로 여기고 있다. 수용의 차원이 달라진 것이다.
그런 까닭에 같은 문화권이던 우리 역시 중국의 의도에 대해 잘 모를 정도이니 미국이나 서구세계가 깊이 이해한다는 것은 무리라 하겠다.
지금 이 말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협력하기도 하고 갈등하기도 한다.
협력과 갈등, 그 모두 서로간의 오해도 있고 의도적인 면도 있다.
당신이 누군가와 잘 지내고 있다고 하자.
그렇게 된 배경에는 쌍방간의 善意(선의)만이 아니라 근본적인 착각이나 오해에서 그렇게 잘 지내게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가령 당신은 가진 재산이 없는데 상대방은 당신이 돈 많은 부자인 줄 알고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바람에 친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상대가 왜 당신에게 접근했는지 그 이유를 모르고 상대는 자신의 의도를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친하게 지내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당신은 상대의 의도를 알게 되고 그 바람에 사귐을 끝낼 수도 있겠지만, 도중에 이미 정이 많이 들어서 더 친하게 지낼 수도 있을 것이다.
상대방 역시 처음에 당신이 돈이 많아 보여서 장차 이용가치가 있겠다 싶어 잘 했는데, 알고 보니 당신에게 돈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하자.
그러나 도중에 정이 들고 또 당신의 새로운 매력을 알게 되는 바람에 계속 좋은 관계를 이어갈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람간의 협력 또한 마찬가지인 것이며, 반대로 서로 미워하고 갈등하는 경우도 그런 경우가 허다하다.
과거 미국과 소련은 이념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했었다.
그 역시 쌍방 간의 많은 오해도 있었고 의도적으로 상대를 제압하려는 생각도 있었다. 미소간의 수 십 년에 걸친 냉전 역시 쌍방 간의 불필요한 오해와 착각, 그리고 고의적인 의도가 개입되었던 것이다.
현재 미국과 중국이 아시아/태평양의 패권을 놓고 경쟁 국면에 들어서 있다.
장차 잘 해결될 수도 있겠지만 잘못되면 치열한 갈등 관계로 들어설 수도 있겠고 더 나아가서 생각하기도 싫은 엄청난 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그리고 과거의 미소 냉전에 못하지 않게 이 경쟁에도 서로에 대한 많은 오해와 착각, 그리고 상대를 제압하겠다는 의도가 마구 뒤범벅이 되어 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의 입장은 미중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 질수록 좋을 것이 없으니 그렇다.
오늘의 최강자 미국이란 나라는 데모크라시를 거의 종교 수준에서 절대적으로 받아들이는 나라이기에 데모크라시 하지 않는 중국이란 바로 잔인한 독재 국가 중국이라 여기고 있다. 이에 천안문 사태에서의 유혈진압이야말로 그 명백하고도 대표적인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굳이 미국식 양당제 국민직선제 정치제도를 택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조화롭게 국가를 운영해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데모크라시를 하라고 요구하는 미국을 내정간섭 차원에서 바라보고 있다.
중국이 데모크라시를 하든 말든 국민들이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게 왜 문제가 되느냐 하는 것이 중국의 입장이고, 미국이 강하고 세긴 하지만 그건 너무 무례한 것이 아니냐는 중국의 생각이다.
피차간에 오해가 많은 것이고 그 속에는 서로 이질적인 문화에서 오는 커다란 괴리가 있는 것이니 이 차이가 미중간의 패권 경쟁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중국은 이미 강대해져서 장차 미국이 누리고 있는 지위를 빼앗아갈 수도 있다는 미국의 염려가 있는 것이고, 반면 중국은 원래 우리는 아시아의 중심 국가였으니 이제 우리가 강성해지면서 자연스럽게 과거의 자리를 되찾는 정상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동기야 어떻게 되건 간에 미국과 중국은 이미 치열한 패권 경쟁에 돌입했다는 점이다.
아울러 패권 경쟁이기도 하지만 미국과 중국은 금전적으로 경제적으로 대단히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측면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인간들 사이의 여러 관계 역시 금전적인 문제만 없으면 그냥 안 보면 그만이지만, 돈에 얽혀 있으면 정리가 대단히 어렵고 복잡해진다.
그러니 미국과 중국 간의 패권 경쟁은 과거에 미소간의 冷戰(냉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복잡한 구조로 얽혀서 진행 중인 것이다.
줄이면 和戰(화전) 양면의 구조라 하겠다.
그러던 중 재작년 서해에서 발생한 ‘천안함 피격 사건’을 계기로 미중간의 경쟁은 좀 더 하드(hard)한 측면이 급격히 고조되고 있다.
북한이 저지른 테러 사건이지만, 그로 인해 그동안 미국과 중국 양국 간에 속으로 잠재되어 있던 갈등요소가 급격히 증폭되어 버린 것이다.
다음 글에서는 천안함 사건으로 본격화된 양국 간의 무력 경쟁에 대해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출처]<a href='http://www.hohodang.com/?bbs/view.php?id=free_style&no=826' target='_blank'>호호당 블로그</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