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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렙

펌 - 믿거나 말거나 ㅎㅎ

히틀러와 성도착증
강남의 모 카페로 인하여 이스라엘 정부가 우리나라 외교부에 강력한 항의를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국가 차원의 외교 문제를 불러 일으킨 이유는 히틀러로 상징되는 나치의 군복과 문양으로 장식되었다는 것이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한 인물로 기록될 히틀러는 남성학적 관점으로 평가하면 성도착증 환자이다. 히틀러의 만행은 바로 이러한 성기능 장애도 하나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서른 살이던 1929년 히틀러는 사진관 직원으로 일하던 열일곱 살의 에바 브라운과 운명적으로 만난다. 비록 히틀러가 에바를 정치적 동지로 여기진 않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평범한 남녀의 사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편지와 선물을 주고받으며 가슴을 설렌다. 그러나 정치 활동에 모든 열정을 바쳐야 했던 히틀러가 에바를 멀리 하자 그녀는 두 차례나 자살을 기도한다. 하지만 에바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과 있는 식사 자리에서 히틀러의 옷차림에 대해 나무라기도 하고 반말도 서슴지 않는 등 자유분방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그래서, 히틀러는 전쟁 막바지에 있었던 폭탄 테러 위기에서 벗어난 직후 수많은 연인(?)들 중 에바에게 '사랑하는 나의 챠펄 … 조만간 집으로 돌아가 당신의 품에서 쉬게 되길 바래…'라는 편지를 썼을 것이다. 그러나 에바는 아리안 족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으나, 질이 얕아 정상적인 성생활이 불가능한 여자였다.

그래서 히틀러는 40세 때는 어린 조카 겔링과 내연의 관계를 맺는데,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기묘한 누드화를 그리며 학대한다. 견디다 못한 겔링은 권총으로 자살했다. 외할머니가 유태인에게 강간 당하여 히틀러의 아버지를 낳았던 불행한 아픔이 히틀러의 성도 뒤틀어 버린 것이다. 사실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은 이런 집안적 내력도 있다.

더구나, 극도의 발기부전 증세까지 있었던 히틀러는 수많은 여배우들을 상대로 온갖 변태 행위를 즐겼는데, 이러한 사실이 새어나갈까 봐 동침하고 나서는 상대 여성을 비밀경찰에 의해 살해하였다.
출처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 원문보기 글쓴이 : 풍우 風茶雨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