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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호당 김태규님 전언

기회보다 노력이, 그리고 운명이란것-우공이산


기회보다 노력이, 그리고 운명이란 것    2012.3.2

안개비가 내리는 서울 거리.

雨水(우수) 지난 저번 수요일 새벽녘, 살짝 비에 그쳐 감질나게 하더니 오늘 비는 제법이다. 기온도 올랐고 대기 중에 촉촉한 수분 가득해서 허파가 모처럼 호강을 한다. 이제 진짜 봄이 왔다.

외전에 올린 어떤 분의 말씀처럼 나는 ‘기회’라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좋아하지 않는 이유 또한 명백하다.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고 그 일에서 성공하고 싶다고 하자. 그런데 그러기 위해선 좋은 기회가 주어져야만 한다면 일의 성공 여부는 하고자 하는 내 意志(의지)와 勞力(노력)보다도 機會(기회)라고 하는 놈이 더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여기서 나는 내가 간절히 원하는 일의 성취 여부를 기회라는 놈에게 의존하거나 맡겨두기가 싫다.

내가 하고프면 하는 거지 기회가 무슨 상관? 이게 내 생각이다. 그냥 생각이 아니라 오랜 연구와 통찰을 통해 얻은 것이다.

그러니 기회란 것에 신경을 쓰기 보다는 내가 어떤 것을 간절히 원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해가고 있다면 절로 주변 여건이 내 원하는 방향으로 조성될 때가 있을 것이니 그러면 일이 조금은 더 쉽게 이루어질 순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회 또는 주변 여건에 따라 일의 成否(성부)가 결정되는 것에 맡기긴 싫다는 뜻에서 나는 기회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확률이란 기본적으로 半半(반반)인 것이니 열심히 꾸준히 노력하다보면 어떨 때는 열심히 해도 안 될 때가 있을 것이며 때로는 생각보다 쉽게 이루어질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런 것에 연연하기가 싫다는 의미에서 나는 기회라는 단어를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을 정말 하고 싶고 성취하고 싶다면 ‘될 때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고 ‘마침내 되지 않는다 해도 그로서 후회할 생각도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정말 하고프고 결과 되지 않는다 해도 아예 후회마저 하지 않을 정도의 간절함이야말로 일의 성부를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3.1 절 휴일 저녁 ‘K 팝 스타 오디션’인가 하는 프로그램 재방송을 보고 있었다.

생방송으로 경연하는 최종 열 명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젊은 아가씨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여기까지’라는 통보를 받으며 탈락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처녀는 손을 들고 마지막으로 노래 한 곡을 부르고 싶다고 심사위원들에게 청을 했다. 참 엉뚱한 행동이었지만, 그 순간 나는 ‘아니 저 처녀 봐라!’ 싶었다.

그녀는 노래를 불렀고 이에 심사위원의 한 명인 가수 ‘보아’가 감동을 받았던지 열 명의 생방송 경연 참가자 중에 한 명으로 발탁해주었다.

당돌한 그녀의 행동은 懇切(간절)하고 또 간절함 그 자체였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속이 울렁거렸다.

한 번 더 노래하게 해 달라는 그녀의 표정은 악다구니가 아니었고, 집요함도 아니었다. 최종 예선에 탈락했고 또 그것을 인정하지만 그냥 돌아서기엔 너무나 후회가 남을 것 같으니 한 번만 더 나를 쳐다봐주시면 어떻겠느냐는 바람이었다,

그렇게 하여 최종 열 명 중에 한 명으로 선발된 그 순간 그것은 절로 찾아온 기회였을까?

나는 그 장면을 두고 그녀에게 기회가 주어졌다고 여기지 않는다. 만일 그것이 기회였다고 한다면 그 기회는 그녀의 간절함이 만들어낸 것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일의 성공에 있어 짧은 시간만 놓고 보면 우연이나 확률, 여건 등이 더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지만, 긴 시간에서 보면 의지와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상담해오면서 그리고 동서고금의 역사에 대한 독서와 통찰을 통해 내가 얻은 교훈이다.

또 하나 내가 기회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기회가 주어져야만 어떤 일에 성공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그러니까 우리들은 기회라는 것에 연연하게 될 것이다.

그러다보면 어떤 이는 그 기회가 주어져서 성공을 했는데 나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여태껏 요 모양 요꼴로 지내고 있다는 서운한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이 자신에 대해서가 아니라 외부 환경에 대해 불만이 생기면 무엇보다도 황금 같은 내 앞의 시간들이 무의미한 시간들처럼 느껴질 수 있다.

무엇보다 그런 사람은 행복할 수가 없을 것이다. 스스로 불행을 불러들이는 경우라 하겠다. 사실 우리의 삶에서 주어진 내 앞의 시간들을 빼면 무에 남을 것이 있겠는가!

우리가 왜 하고자 하는 일에서 성공하고 성취하고자 하는가?

결국 따지고 보면 행복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일이 성취되어야만 행복할 수 있다면 그런 성취나 성공을 바라는 것 자체가 바보짓이라 본다. (조건부 행복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는 사실!)

일의 성취가 행복의 절대 조건이라면 나는 아예 성취나 성공 같은 것은 바라고 싶지도 않다.

성취를 바라고 성공을 바라면서 내 온 힘과 마음을 한 곳으로 모아 노력을 집중해가는 그 자체로서 행복해야만 그 사람은 결국 성공할 수 있고 성취할 수 있다.

과정 자체로서 행복할 수 있어야 긴 시간 동안 행복할 수 있음이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그동안 좋은 기회를 놓친 건 아닐까 하는 생각, 다시 말해 그런 생각으로 우울하다면 그런 사람에게 성공이나 성취는 주어지지 않을 것으로 여긴다. 또 성공한다 해도 그 순간의 행복에 그칠 것이니 그게 뭐 좋은가!

성공과 성취를 떠나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 성공과 성취를 향해 한발 한발 지금 내가 걸어가고 있다는 그 자체로서 만족하고 행복해야만 성공이나 성취에 이르는 길고 긴 시간 동안 진지하고 간절하게 노력해갈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성공이나 성취는 바라는 자에게 주어진다. 진실이다.

그러나 성공이나 성취는 쉬이 주어지지 않는다. 길고 긴 시간 동안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 또한 진실이다.

그런데 긴 시간 동안 노력을 집중하려면 그 순간순간을 행복해하고 즐기지 않는다면 그 노력의 질은 자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노력의 질이 떨어지면 나보다 더 간절하게 바라고 노력하는 자의 성공과 성취의 확률이 더 높아질 것이고 그 결과 나는 성공과 성취를 이룰 수 없을 것이다.

세상은 우리가 바라는 만큼 그리고 노력한 만큼 가져가는 곳이다. 그런데 기회라고 하는 확률적인 단어에 우리가 집착하고 연연할수록 그와 반비례하여 내 노력과 간절함의 정도는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일에 있어 성공과 성취를 바란다면 기회가 주어지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왜 내가 그 일에 있어 성공과 성취를 바라는지 그것부터 충분히 시간을 두고 그 이유를 따져봐야 할 일이다.

성공과 성취에 이르는 길은 길고 긴 여정이 될 것이니 자신의 본질적인 이유가 아니라 다른 이유에서 섣불리 길을 떠난다면 얼마 안 가서 금방 그만 두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내 본질과 합치될 때만이 성공에 이르는 길고 긴 시간 동안 지루해하지 않고 초조해하지 않고 재미있어 하면서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면서 그 길고 긴 여정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것, 이건 사실 지극히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運命(운명)이란 무엇인가?

간단히 얘기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본질을 알아야 행복하고 또 성공할 수 있는데, 그 본질은 우리가 운명의 바닥에 도달하고 또 내가 흔히 말하는 財(재)의 바닥에 도달해봐야만 비로소 알 게 되는 것이라는 얘기이다.

(여기서 본질이라 하는 것이 바로 타고난 명이다. 그러니 명은 이미 정해져있다.)

운명의 바닥과 財(재)의 바닥을 지나면서 솔직하고도 진지한 자기 성찰을 통해 자아의 본질을 알고 나면 저절로 노력하게 되고 그 노력이 이어지게 된다. (이를 두고 나는 운이 상승한다고 말한다.)

그 다음은 타고난 ‘그릇’에 따라 그 그릇의 용량만큼 노력을 통해 가져오는 것이 인생이란 생각이다.

愚公移山(우공이산)이란 말이 있다. 어리석고 무모한 한 영감님이 산을 옮기는 무지막지한 일을 한다고 하니 산이 그 소식을 듣고선 장소를 옮겨버렸다는 설화다.

여기서 그 愚公(우공)의 기세에 산이 겁을 먹었던 이유를 잘 새겨볼 필요가 있다. 그 영감님은 산을 옮기는 일, 移山(이산)을 태어나면서부터 평생의 업으로 정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다시 말해 그 영감님의 본질이었던 것이다.

우공: 난 산을 옮기고야 말겠어!

산: 왜? 왜 나를 옮기려하는데?

우공: 묻지 마슈, 난 그냥 당신을 옮기고 싶을 뿐야.

산: 이런! 또라이 영감, 에이 더러워서 내가 옮긴다.

이에 어느 날 휘리릭-하고 산이 옮겨갔다는 얘기이다. 원 참!

[출처]<a href='http://www.hohodang.com/?bbs/view.php?id=free_style&amp;no=764' target='_blank'>호호당 블로그</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