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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호당 김태규님 전언

운명의 수레바퀴란 결국 무엇인가? #1

운명의 수레바퀴란 결국 무엇인가? #1    2014.4.9

저번 글에서 여신 ‘포르투나’가 운명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있다는 말과 함께 중세의 책인 ‘카르미나 부라나’ 속에 그 그림이 들어가 있다고 했다.

(아직 보지 않았다면 영문 위키피디아에 가서 ‘carmina burana’ 라고 입력해보시길. 오른 쪽 상단에 있다.)  

그림에는 뭔가 글이 적혀있는데 영어로는 reign, 즉 군림하고 통치한다는 의미이다.
 
그림과 함께 설명하면 바퀴의 맨 위에 왕관을 쓰고 지팡이를 쥐고 앉은 사람 곁에는 ‘나는 군림한다’는 말이 있고, 오른 쪽으로 추락하는 사람 곁에는 ‘나는 ‘군림했었다’고 적혀 있다.  

다시 맨 밑의 바퀴에 깔려 신음하는 사람 곁에는 ‘나의 군림은 끝이 났다’고 적혀 있고, 다시 왼쪽의 바퀴를 힘차게 오르고 있는 사람의 곁에는 ‘나는 군림할 것’이라고 적혀있다.

시계방향으로 회전하는 운명의 수레바퀴에는 네 사람이 그려져 있지만, 실은 수레바퀴가 회전하면서 한 사람이 겪게 되는 운명의 네 가지 국면, 즉 四季節(사계절)의 모습을 뜻한다.  

이 그림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그림의 왼쪽, 바퀴를 힘차게 오르는 사람, ‘나는 군림할 것’이라고 미래형으로 된 부분은 운명의 여름을 의미한다.

2. 그림의 위쪽, 권좌에 앉아 ‘나는 군림하고 있다’고 현재형으로 된 부분은 운명의 가을을 의미한다.

3. 그림의 오른 쪽, 추락하면서 ‘나는 군림했었다’고 과거형으로 된 부분은 운명의 겨울을 의미한다.

4. 그림의 아래, 바퀴에 깔려 신음하면서 ‘나의 군림은 끝이 났다’고 과거완료형으로 된 부분은 운명의 봄을 의미한다.

이 대목에서 내가 운명을 연구하면서 알게 된 한 가지 놀라운 사실, 이미 그간 여러 차례 얘기했었으나 독자들은 미처 잘 알아차리고 있지는 않을 것으로 여겨지는 점에 대해 한 번 더 얘기하고자 한다.

운명의 수레바퀴에서 알 수 있듯이 맨 위에 군림하고 있는 자는 가을을 지나고 있다는 점이고, 그 반대로 맨 밑에 바퀴에 깔려 신음하고 자는 봄을 보내고 있다는 점이다.

가을이 풍요의 계절이라면 봄은 그와 반대로 결핍의 계절이 된다.

앞의 글에서 헤르만 헤세의 소설 중에 “지치면 안 돼, 수레바퀴 밑에 깔릴 지도 모르니까!”하는 문구가 있다고 했는데 이는 바로 운명의 봄에 처한 경우를 말한다.

다시 말해서 운명의 봄이야말로 가장 힘든 계절이라는 점이다. 물론 창밖의 봄도 역시 그러하다.

봄이 되면 햇빛 환해지고 마른 산에 꽃 피고 봄풀 돋아나서 좋은 계절이다 싶건만, 왜 힘든 계절이라는 하는 것일까?

봄은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蘇生(소생)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만물은 2월 초의 立春(입춘)으로서 죽고 그 즉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은 바로 復活(부활)이고 再活(재활)인 바, 그것이 결코 순탄한 과정일 순 없다.  

봄을 흔히 ‘희망의 계절’이라 부른다. 사실이다. 그런데 희망한다는 것은 현재 당신이 힘든 처지에 있다는 것이고 뭔가 缺乏(결핍)을 느끼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모자라고 부족하니까 희망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궁핍할 때는 언젠가 좋은 날이 오겠지 하는 희망으로 살아가듯이 말이다.

그렇기에 봄은 희망의 계절이자 동시에 결핍의 계절이다. 그렇기에 가장 힘든 계절이 바로 봄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한 가지 구분을 짓고 넘어가야할 것이 하나 있다.

배고픈 자는 배를 채울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하지만, 배가 부른 자는 배부를 것을 희망하지 않는다. 입맛이 없는 까닭에 더 맛있고 새로운 것을 찾는다. 배가 부른 자는 불만과 욕망을 함께 가지는 법인데, 그것은 앞서의 희망과는 또 다른 성질의 것이라는 점이다.

정리하면 배고픈 자는 결핍과 희망을 갖는 것이고, 배부른 자는 불만과 욕망을 갖는다. 사실 이 둘은 대단히 비슷해서 사람들은 잘 구분하지 못한다.

그 둘을 구분하는 방법은 희망하는 자의 눈빛은 간절한 반면, 욕망하는 자의 눈빛은 불만으로 가득하다는 점이다. (나 호호당은 오랜 경험으로 사람을 대하면 금방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다.)  
 
봄은 결핍의 계절이고 가장 힘든 계절이다. 운명의 봄 역시 그러하다.

T.S. 엘리어트가 남기고 간 장편시 ‘황무지’의 서두 부분을 보자.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듯했다.
망각의 눈이 내려 대지를 덮고
마른 감자로 약간의 목숨을 부지했다.”

본문은 이렇다.

April is the cruel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Winter kept us warm, covering
Earth in forgetful snow, feeding
A little life with dried tubers.

다시 한 번 확인하자면 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제목이 그것이다. 봄은 상실과 결핍의 계절인 것이다.

봄날 햇빛은 환하지만 들판은 텅 비어있고, 풍성함은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게 봄이다. 2월의 봄과 3월의 봄, 4월의 봄이 다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봄은 결핍과 상실의 계절이다.

그렇기에 봄은 운명의 수레바퀴 아래에 깔려 신음하고 고통하는 계절이다. 또 그렇기에 逆說(역설)적으로 희망하는 계절이다.

우리 대한민국 역시도 1964 년부터 시작해서 1979 년에 끝이 난 국운의 봄은 대단히 힘겨운 시간들이었다.

궁핍과 상실 속에서 당시의 사람들은 풍요에 대한 꿈을 꾸었고 또 민주화되고 발전된 선진조국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그런데 우리는 그 꿈과 희망을 달성했고 이룩했다. 1994 년부터 2009 년에 이르는 국운의 가을 기간 동안에 우리는 풍요를 누렸고 민주화된 세상을 살았다. 그런데 그게 꿈에 그리던 것만큼이나 좋았는가?

아닐 것이다.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고 부정할 것이다.

그에 대한 해답은 간단하다. 불만에 가득 차서 더 큰 것들을 욕망하고 있었기에 그렇다.

운명의 수레바퀴 맨 위에 왕관을 쓰고 권위의 지팡이를 짚고 앉은 우리였지만, 분명 군림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불만에 차 있었을 뿐이다.

그것을 나는 ‘帝王(제왕)의 불만’이라 부른다.

이제 우리나라는 2009 년부터 겨울로 접어들었고, 올해 2014 甲午(갑오)년부터는 본격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한 해로 치면 12월의 大雪(대설)을 맞이했다.

겨울은 사실 봄보다 훨씬 나은 계절이다.

T.S. 엘리어트의 시구에 나오는 겨울을 보라.

“겨울은 오히려 따듯했다.
망각의 눈이 내려 대지를 덮고
마른 감자로 약간의 목숨을 부지했다.”

겨울이 오히려 따뜻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반면 초봄의 추위는 사람의 마음을 더욱 시리게 한다.

망각의 눈이 내린다, 힘차게 약진하던 패기와 열정의 시절은 가고 이어서 찾아온 풍요의 시절 또한 갔으니 이젠 잊어버리는 것이 차라리 좋을 것이다, 때마침 대지를 모두 덮어주는 忘却(망각)의 눈이 내리는 겨울이다.

그리고 가을 수확을 상실한 자에게도 그나마 마른 감자가 있어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봄 들판엔 먹을 것이 사실 없고 겨우 봄나물이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모든 봄은 상실과 결핍의 봄이고 또 희망의 봄이다.

이렇게 봄이 지나면 드디어 여름이 온다. 봄의 상실과 결핍 그리고 희망은 사람으로 하여금 ‘헝그리 복서’로 만들어놓는다.

배를 곪아보았고 여전히 식욕이 왕성한 헝그리 복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우아한 데라곤 어느 한 군데도 없다, 돈만 준다면 링 위에서 상대를 사정없이 때려서 눕히겠다는 투지로 가득하다. 이른바 ‘싼 티’로 가득한 것이 헝그리 복서이다.

이 단계는 운명의 수레바퀴 그림에서 왼쪽에 바퀴를 타고 위로 올라가는 사람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운명의 여름인 것이다.

1979 년부터 1994 년까지의 우리 대한민국은 바로 헝그리 복서로서 ‘싼 티’를 줄줄 흘리고 다녔다.

그 모습이 바로 여름의 모습인 것이다.

글이 길어져서 다음 글에서 잇기로 한다.

창밖에 또 하루의 봄날이 지나가고 있다. 열심히 신록을 내는 봄나무들의 마음 또한 결코 편하지가 않다는 것을 이제 좀 이해하시겠는가? 그러니 봄나무를 사랑하고 긍휼히 여길 수밖에 더 있겠는가 .
[출처]<a href='http://www.hohodang.com/?bbs/view.php?id=free_style&amp;no=1175' target='_blank'>호호당 블로그</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