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수레바퀴란 결국 무엇인가? #3--니체의 超人(초인) 철학 2014.4.14
운명의 수레바퀴가 영원히 돌아가고 있음을 직관했던 니체는 그를 永劫回歸(영겁회귀)라 칭했다.
운명의 수레바퀴를 더 간단히 말하면 圓(원)운동이라 하겠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모두가 이 운명의 수레바퀴에 얽매어 있다는 점이다.
운명의 봄이 오면 힘들어 하고 여름이 오면 욕망을 사르며 도전해가며, 가을이 오면 군림하고 잘난 맛에 우쭐대다가 겨울이 오면 시들해지니, 그간에 우리는 갖은 喜怒哀樂(희노애락)에 시달리다가 생을 마친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불교에서 말하는 生死輪廻(생사윤회)라 하겠다.
이에 니체는 나름으로 거대한 원운동인 운명의 수레바퀴로부터 초월하는 방법, 즉 운명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제시했다.
그가 제시한 것은 지금 당신이 서있는 이 자리와 이 순간이야말로 거대한 원의 中心點(중심점)인 것을 알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지금 서있는 이 자리가 圓環(원환)의 中心(중심)이라는 사실만 진정으로 알고 인식하면 당신은 즉각 超人(초인)이 된다는 말이다.
운명의 규율, 운명의 수레바퀴가 보여주는 원운동의 법칙을 오랜 세월에 걸쳐 알아내고 검증해내는데 성공한 나 호호당은 니체의 가르침으로부터 실로 커다란 깨침과 위안을 얻었다.
그렇기에 니체의 말을 독자에게 제대로 알려주고픈 마음이다.
여기에 하나의 커다란 원환이 있다고 하자. 우리는 오로지 그 圓周(원주) 위에만 서있을 수 있다. 원의 안으로도 밖으로도 우리가 존재할 수가 없다고 하자. 이 말은 우리가 결국 운명의 수레바퀴 가장자리에 붙어 있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원의 중심점, 바퀴의 축이 되는 지점을 생각할 순 있겠지만, 그것은 관념 속에서만 존재하기에 우리는 원주의 표면에만 머물 수 있다고 가정해보는 것이다.
원의 중심점이 아니라 우리가 머물 수 있는 圓周(원주)상에서의 중심점은 어디가 되는가?
사실 원주에서의 중심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모든 자리가 원주의 중심점이라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원주 상에선 모든 지점이 ‘價値同等(가치동등)’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자가 운명의 수레바퀴 위에서 흔히 좋다고 하는 가을에 머물고 있든 아니면 바퀴에 깔려 신음하는 봄에 머물고 있든 그렇지 않으면 여름 혹은 겨울에 머물고 있든 그 모두가 가치 면에선 동등하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따라서 그대가 호시절을 구가하고 있든 절망의 나락에서 어쩔 수 없이 몰래 희망을 품고자 노력하고 있든 간에 그 모두 상관없이 그대는 자기 운명의 중심점에 서있는 것이 된다.
어차피 누구나 공평하게 운명의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을 보내게 될 것이니 그런 것은 그저 先後(선후)의 순서에 불과할 뿐인 것이다.
겨울이 오지 말라고 해도 겨울은 올 것이며, 봄 또한 그러할 것이며 여름과 가을 또한 그러할 것이니 굳이 그것에 연연하고 애를 태울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 니체의 말이다.
어차피 수레바퀴 위에서 돌고 있으니, 그냥 지금 이 순간에 서 있는 이 자리가 전부라고 생각하면 되는 게 아니겠어? 하는 니체의 말이다.
지나간 과거는 이미 존재하지 않은 것이니 미련둘 것 없고,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 역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니 그것에 연연해하지 말자, 그저 이 순간 내가 서있는 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면서 살자는 것이 니체가 말한 超越(초월)이고 그런 마음을 가진 자가 超人(초인)이다.
超越(초월)이란 당신이 서있는 자리를 떠나 다시 말해서 현실의 세상을 벗어나 다른 좋은 세계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다. 일정한 경계나 한계에 머물면서도 그 경계나 한계에 束縛(속박)되거나 구속되지 않는 정신을 말한다.
현실에 머물되 그로부터 자유로운 것을 화엄경에선 圓通無碍(원통무애)라 하는 것이고 그런 마음을 圓融自在(원융자재)라 하는 것이다.
니체가 말한 바, 지금 서있는 이 자리가 圓環(원환)의 中心(중심)이라는 사실만 진정으로 알고 인식하면 당신은 즉각 超人(초인)이 될 수 있다는 말 역시 화엄경의 講說(강설)과 정확하게 동일한 말이다.
그런 까닭에 니체의 超人(초인)철학은 선불교의 깨침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며, 道家(도가) 사상을 전하는 淮南子(회남자)에 적혀있는 가르침과도 같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화엄경은 인도식 문학과 표현을 통해 설명하고 있는 것이고, 니체는 독일식 문학과 표현을 통해 주장하는 것이며, 회남자는 중국식 문학과 표현법을 통해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니체의 표현법, 원주 상에서의 모든 점을 가치등가로 파악할 수 있고 그를 진실로 납득한다면 그 자는 결국 머물 수 있는 원주, 수레바퀴의 표면에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은 관념으로 존재하는 원의 중심점에 설 수 있게 된다.
몸은 운명의 수레바퀴 위에 올라타서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지만 마음은 원의 중심점에 서서 돌아가는 수레바퀴를 구경하고 또 나아가서 감상할 수 있도 있게 된다는 얘기이다. ‘하, 저 수레바퀴 잘도 돌아가는구나, 쉼 없이 잘도’ 하면서 말이다.
니체의 초인철학 그리고 선불교의 가르침, 회남자의 교훈을 어설픈 머리로서가 아니라 마음으로서 받아들이고 나면 사람은 실로 커다란 利益(이익)을 얻을 수 있다.
무슨 이익을 얻을 수 있을까?
생명은 목숨을 부지하고 연명하는 것을 제1차적 이익으로 하고 다음으론 마음 편하게 태평하게 사는 것을 제2차적 이익으로 삼는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왕 한 번 사는 거 부귀와 영화를 누리면서 사는 것을 제3차적 이익으로 삼는다.
이는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의 공통된 목적이고 이익이다. 이를 우리는 ‘누리면서 산다’고 표현한다.
그렇건만 아시다시피 모든 생명은 동일한 목적을 지니고 있기에 내가 목표하는 제1차, 제2차, 그리고 제3차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다른 생명과 다른 사람의 이익을 침범하지 않을 수 없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 결과 생명의 세계는 토마스 홉스가 말한 바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물론 세상이 발전하고 좋아지면서 그 투쟁의 강도와 양상이 다소 부드러워지고 온건해지고 있다고는 하나 본질은 여전히 하등의 변함이 없지 않은가 말이다.
서로간의 투쟁 또한 영원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당신이 제 아무리 온순하고 평화적인 사람일지라도 단백질 섭취를 위해 저 유순하기 그지없는 눈매를 가진 암송아지를 도륙한 살을 먹고 있지 않은가. 인간만이 고귀하다는 실로 말도 되지 않는 사상은 결국 詐欺(사기)치는 수작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렇지만 니체의 초인철학, 원주에서의 그 어떠한 지점도 중심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를 통해 비록 몸은 원주에 머문다 해도 마음은 원주가 아니라 원의 중심점에 설 수 있게 되면 우리는 생명이 부여하는 엄청난 압력, 앞서 말한 여러 이익을 취해야 한다는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다시 말하면 몸은 불교에서 말하는 생사윤회를 벗어날 수 없다 해도 마음과 정신은 그 압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몸을 받아서 하나의 생명으로 태어난 이상 어쩔 수 없이 가질 수밖에 없는 목표들, 앞서의 3 가지 이익을 취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내가 꼭 출세해야만 하나? 나라고 해서 반드시 오래 장수해야 한다는 법이 있는가? 나라고 해서 권력과 명예를 얻어 떵떵거리며 살아야만 하는가?
바로 이런 강박관념에서 자유롭게 될 수 있으니 이를 두고 큰 이익이라 하는 것이다. 세상에 진정한 강자는 잘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라 하겠으니 바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지금 이렇게 말을 하고 있으니 독자는 그건 得道(득도)한 道人(도인)의 경지가 아니냐고 여길 것이다.
틀리지 않다, 바로 도인의 경지를 말하고 있다. 그런데 굳이 당신이 득도한 도인 혹은 니체의 超人(초인)이 되지 말라는 법 또한 없지 않은가 말이다.
득도한다는 것이 꼭 눈 내리는 雪山(설산)에 들어가 수행하고 바위 앞에 앉아 9 년 동안 쳐다보고만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지금 내가 말하는 이 생각을 온전히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게 바로 득도한 사람이다. 결코 신비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의 대다수는 그렇게 되길 원치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여전히 운명의 수레바퀴 가장자리 표면에 머물면서 운명의 호시절을 기다리며 살고자 할 것이다. 뭐 정히 그렇다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오늘은 운명의 수레바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니체의 말을 빌어 이야기했다. 이제 다음 글에선 여태껏 말하지 않은 것, 즉 운명의 수레바퀴란 결국 무엇인가에 대해 최종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봄 가뭄이 오래 이어지고 있다. 땅이 말라서 뒷산의 샘도 말랐다. 비님이여, 바라건대 마른 대지를 한 번 흥건하게 적셔주시옵소서, 비나이다.
[출처]<a href='http://www.hohodang.com/?bbs/view.php?id=free_style&no=1177' target='_blank'>호호당 블로그</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