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삼세번 .... 진퇴를 알아야 실패을 줄일수 있다.
운이 좋아도 탈인데... 2013.1.23
잘 알고 지내는 선배의 사위가 필리핀 마닐라 출장 중 호텔 카지노에 들렀다가 백만 원 이상을 땄다고 한다. 그런 사위가 기특했던 모양인지 선배의 표정이 은근했다.
마흔 초반인 선배의 사위는 현재 자신의 사업을 잘 꾸려가고 있다. 그래서 ‘선배, 사위 생년월일 좀 물어봐 주지 그래, 내가 한 번 살펴볼 께’ 했더니 선배는 그 자리에서 즉각 전화로 물어보고는 알려주었다.
四柱(사주)를 빼어 잠깐 살펴보니 금방 이해가 갔다. 능히 그럴만한 운세였다.
운이 좋을 땐 전혀 관련이 없는 일도 우연찮게 잘되는 법이다. 그게 운이다.
선배의 사위는 한창 절정의 운세를 달리고 있었다. 2011 년부터 2018 년 사이가 일생을 통해 가장 화려한 好運(호운)이다. 이에 다시 사위가 橫財(횡재)한 날을 물어보니 그 또한 고개를 끄덕일 만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그냥은 그렇고 해서 선배에게 한 가지를 얘기해주었다.
‘그 사위 말이야, 지금 한창 좋을 때야, 2018 년 정도 되면 평생 먹을 것을 장만해놓았을 것이니 그 때가 되면 더 이상 욕심 내지 말고 그냥 기왕에 하던 일만 잘하라고 선배가 얘기를 좀 해 줘, 그게 좋을 거야.’
그랬더니 선배는 ‘그 놈이 말이야, 누구 말을 듣질 않아서...’ 하며 말꼬리를 흐리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마음이 무거워졌지만 금방 표정을 바꾸었다. ‘그래도 어른인 장인 말은 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말을 던지고는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전화를 끊고 다른 생각을 했지만, 殘像(잔상)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선배의 사위가 아마도 때가 되면 다 말아먹을 거라는 생각이 종내 떨쳐지질 않았다. 사위라는 친구야 일면식도 없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선배의 딸과 그 자녀들에게 여파가 미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선배는 내 블로그의 존재를 모르기에 이렇게 글을 쓴다.)
그러다가 시간이 좀 지나면서 늘 하는 버릇대로 ‘인생이란 거 다 그런 거지 뭐’ 하는 탄식과 함께 생각을 비웠다.
不運(불운)한 것도 참 답답한 노릇이지만, 사람은 운이 좋아도 문제가 되고 탈이 된다.
운이 좋아서 문제가 되는 것 중에 대표적인 것은 나이 마흔 전후해서 운세가 한창 좋은 사람들이다. 운세가 한창 좋다는 것은 인생의 四季節(사계절) 상에서 양력 10월의 寒露(한로)에 해당되는 것을 말한다.
앞에서 말한 그 선배의 사위가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된다. 1972 년 생이니 지금 41 세, 운세는 2011 년이 한로였고 지금은 10월 중순의 霜降(상강) 정도를 가고 있으니 걱정이 되는 것이다.
이 경우 2018 년부터 운세가 小雪(소설)로 접어드는데 그 무렵 사람이 뿜어내는 이른바 ‘아우라’는 최고조에 달한다. 카리스마가 가장 강렬한 때가 되는 것이다.
사십 후반에서 오십 초반에 그런 운세가 되면 열에 아홉은 사고를 치게 된다.
그간의 모든 것이 해서 안 된 적이 없어서 무엇을 해도 자신만은 특별하게 운이 따르는구나 싶은 착각에 빠진다. 운도 거듭되면 실력이란 말이 있듯이 그간 줄곧 운이 좋았으니 이제는 더 큰 것, 더 거창한 무엇에 도전하고 싶어진다.
오십 초반이면 여전히 체력도 상당하고 의욕도 강한 나이, 이른바 年富力强(연부역강)한 때이고 운세마저 그간 좋았다면 그간의 확장세를 멈추기에는 아쉬움이 크기 마련이다.
나이가 좀 더 들었다면 체력의 한계도 느낄 것이고, 세상 경험도 더욱 풍부해서 이제 이대로 쭉 좋을 것만 같지는 않다는 생각도 할 수 있겠지만 오십 초반이면 그게 어렵다.
사람은 생리적으로 48 세가 지나면서 서서히 노쇠의 기미가 닥쳐오지만 그보다는 그간에 쌓인 노련미가 더 말을 하는 나이가 오십 전후한 나이라 하겠다.
인생사 결국 언제 나아가고 언제 멈추느냐가 모든 것을 결정짓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나아갈 進(진)과 물러설 退(퇴), 즉 進退(진퇴)가 모든 것이다.
오늘날 세상은 사람의 수명이 많이 길어졌다. 팔십까지는 거의 기본이고, 구십도 드물지 않다.
앞서 그 선배 사위의 나이는 지금 41 세이고 운세는 46 세부터 서서히 물러서야 할 것인데, 그때 가서도 여전히 혈기 왕성할 것이고 그간 해온 일이 잘 되었으니 過慾(과욕)을 부릴 가능성이 큰 것이다.
더하여 남의 말을 거의 들을 생각이 없을 정도의 자신감까지 가졌다면 결과는 거의 정해져 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닌 것이다.
운세를 몰라도 언제 멈추어야 할 것인지를 알 수 있는 판단 요령은 있다. 三 (삼)세 번이란 말이 있으니 바로 그것이다.
이 일에 손을 대었더니 잘되고 다시 다른 일에 도전했더니 잘 되었다. 이에 한 번 더 큰 일에 도전했더니 결과가 좋았다면 바로 삼 세 번의 好運(호운)이 이제 끝이 난 것이라 봐도 틀림이 없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2002 년 한일 월드컵 당시 우리는 4강 진출이라는 기대 이상의 엄청난 성과를 봤다.
예선전에서 강호 포르트갈을 꺾은 것이 망외의 성과가 되어 16 강에 진출했다. 한 번 행운이 따라준 것이다. 8 강 진출 전에서 무지막지한 강호 이탈리아를 체력전 끝에 승리했다, 두 번 운이 따라준 것이다. 다음 4 강전에서 스페인이란 강자를 만나 승부차기로 이길 수 있었다.
행운이 세 번 거듭되었으니 그것으로 끝이 난 것이다.
스페인전에서 승리한 후 명장 히딩크는 축구공을 관중석을 향해 차줌으로써 팬들의 성원에 답례했다. 그때 히딩크 감독의 표정은 그간의 벅찬 여정이 이제 끝이 났다는 식의 표정이었다.
히딩크 감독은 오랜 경험을 통해 우리 대표 팀이 할 만큼 했고 더 이상의 것을 바란다는 것은 무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했기에 그런 표정을 보였다고 생각한다.
우리 축구 국가 대표 팀의 수준은 16 강에 약간 못 미치는 24 강 언저리라 봐야 하는데, 4 강까지 올랐다는 것은 행운이 삼 세 번 거듭되었음을 말해준다.
이런 것이 바로 삼 세 번의 좋은 예라 하겠다.
사람을 포함하여 모든 것이 60 년에 걸쳐 榮枯盛衰(영고성쇠)의 순환을 보여준다.
이 기간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세 번의 成就(성취)가 존재하고 세 번의 挫折(좌절)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그러니 행운은 세 번 거듭되는 것이 진실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호는 대한민국이다. 그러나 2002 년 월드컵 이전까지는 대한민국이란 칭호를 잘 사용하지 않았고 대개의 경우 그냥 ‘한국’이라 불렀다.
스포츠 중계에서도 ‘우리 한국 선수들 잘 뛰고 있다’고 했지 대한민국 선수들이란 말은 듣기 어려웠다.
그것이 2002 년 월드컵 당시 붉은 악마의 응원가 속에 ‘대-한 민국’이란 말이 들어가면서부터 자연스럽게 대한민국이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물론 국호가 대한민국이지만, ‘큰 大(대)’를 붙인 국호를 널리 사용한다는 것은 우리의 자존감이 그만큼 커졌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는 붉은 악마의 응원가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의 운세가 그럴 때가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1964 년에 시작된 우리 국운에 있어 가장 화려한 때를 지적하면 2004 년 10월부터 90 개월, 즉 7 년 반의 세월이 지난 2012년 4월까지가 되는 까닭에 ‘한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된 것이다.
헌법에 명시된 바 ‘대한민국이라 부르는 것은 당연히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크다는 의미의 大(대)를 사용한다는 것은 약간은 낯 간지러운 바가 없지 않다.
헌법을 제정하던 당시 사실 아무 것도 없는 상태의 신생 공화국이었기에 크다는 의미의 大(대)를 사용한 것은 오히려 고무적이라 하겠지만, 거꾸로 눈부신 발전을 보인 나라가 된 마당에 와서 크다는 의미의 大(대)를 스스로 사용하는 것은 다소간 어색하다는 말이다.
줄여 말하면 2002 년 월드컵 무렵부터 우리의 自尊(자존)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관념이 그만큼 커졌던 것이다.
어려울 때는 스스로를 신뢰하고 자신감을 가져야 하지만, 세월이 좋을 때는 스스로를 낮추는 것이 불변의 지혜이다. 이에 고전에는 ‘貴人(귀인)은 비천한 이름을 쓴다’고 되어있다.
우리 대한민국이 거듭해온 빛나는 成就(성취)의 세월은 이제 끝이 났다, 훗날 더 알차게 뻗어가기 위해서는 멈추고 쉬어야 할 때가 시작되었다.
이제는 이룩한 것을 지켜야 할 때이고 지키기도 벅찬 세월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신감은 정말 대단했었고 지금도 대단하다. 그러나 이제는 ‘하면 된다는 신념’보다는 지나온 우리의 발걸음을 되돌아보는 것이 더 중요한 때가 온 것이다.
줄이면 省察(성찰)의 때라 하겠다.
최근 유행하는 우리 사회의 구호가 ‘경제민주화’인데, 무엇이 경제민주화인지에 대해 정말 심각하고 신중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경제민주화가 보다 많은 財源(재원)을 필요로 하는 ‘소비형 복지국가’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그 결과는 災殃(재앙)이 될 것이라 본다.
운은 좋아도 탈인 것이니 이는 작게는 한 개인의 일에서부터 크게는 나라에 이르기까지 하등의 차이가 없다.
[출처]<a href='http://www.hohodang.com/?bbs/view.php?id=free_style&no=945' target='_blank'>호호당 블로그</a>